티스토리 뷰
이집트에서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시기, 북극해의 브랑겔 섬에서는 지구상 마지막 털매머드가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털매머드의 멸종을 1만 년 전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불과 약 4천 년 전까지 이들은 외딴섬에서 생존했습니다. 풍부한 먹이와 인간의 위협이 없던 낙원 같은 환경에서, 털매머드는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일까요.

유전적 붕괴: 근친교배가 만든 치명적 돌연변이
신생대 플라이스토세 초기에 등장한 털매머드는 유라시아 지역과 캐나다 북부 알래스카까지 널리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약 4만 년 전부터 시작된 기후변화와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인간의 사냥으로 인해 점차 이들의 활동 영역이 줄어들게 됩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였던 곳이 섬으로 변하면서 매머드 무리 중 일부가 브랑겔 섬에 고립되었고, 육지와의 거리는 무려 140km나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동물 유전학자인 알프레드 루카 박사는 브랑겔 섬에서 발견된 털매머드 두 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했는데, 그중 한 마리에서 유전적 다양성이 결여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당시 3천에서 8백 마리 정도의 매머드가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렇게 개체군의 크기가 작은 상태에서 수천 년 동안 근친 교배가 일어나면 질병이나 해로운 열성 유전자가 개체군 전체에 쌓이게 됩니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털매머드가 없기 때문에 고립된 개체군 내에는 새로운 유전자가 퍼질 수 없고, 이는 결국 유전적 다양성의 감소로 이어져 개체군의 멸종을 가속화시킵니다.
일리노이 시카고 대학의 에린 프라이 박사는 브랑겔 섬의 털매머드 DNA를 지금의 아시아 코끼리와 고대 매머드의 DNA와 비교했습니다. 놀랍게도 브랑겔 섬의 매머드 DNA에서는 수컷의 생식 능력과 관련된 FRK1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됐고, 폐포의 섬모 발달에 관여하는 HYLS1 유전자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짝짓기를 해도 새끼를 낳지 못하거나 폐포 발달이 제대로 안 되는 매머드들이 개체군 내에 퍼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유전적 결함은 단순히 개별 개체의 문제가 아니라, 고립된 환경에서 근친교배를 반복한 결과 전체 집단에 축적된 치명적인 돌연변이였습니다. 소규모 개체군에서 발생한 유해한 유전자 변이는 자연선택으로 제거되지 못하고 오히려 확산되어, 결국 종 전체의 생존 능력을 약화시키는 '돌연변이 붕괴'로 이어진 것입니다.
환경오염: 온난화가 만든 독성 물질의 역습
겉으로 보면 브랑겔 섬은 털매머드에게 낙원이었습니다. 지난 2017년 헬싱키 대학교의 로라 아늑해 박사는 당시 섬은 먹거리가 풍부한 툰드라 지대였으며, 이곳에서 발견된 털매머드의 화석에서 추출한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영양 상태를 반영하는 탄소와 질소 원소가 정상 수준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섬에 갇힌 처지였지만 먹이는 풍부했고, 게다가 이곳은 인간의 손길도 닿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인간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될 시기도 약 수백 년 전쯤으로 이는 매머드가 멸종하고도 한참 뒤였습니다.
하지만 로라 아늑해 박사는 동위 원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매머드 뼈에서 황과 스트론튬이 다량으로 검출된 것입니다. 아늑해 박사는 털매머드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 지역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강수량이 증가했고, 이는 암석의 풍화 작용을 가속화시켜 다량의 유독한 중금속이 토양으로 흘러나와 매머드의 식수를 오염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즉, 환경오염으로 매머드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 요인은 유전적 문제와 결합하여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미 유전적으로 취약해진 개체군이 환경 독소에 노출되면, 면역 체계와 생식 능력이 더욱 악화됩니다. 중금속 오염은 신경계 손상, 생식 능력 저하, 면역력 약화를 일으키며, 특히 임신한 암컷과 새끼 매머드에게는 더욱 치명적이었을 것입니다. 풍부한 먹이가 있어도 오염된 물과 토양으로 인해 매머드들은 서서히 쇠약해지고, 번식률이 낮아지며, 결국 개체군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감소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립의 비극: Ice 현상과 복합적 멸종 요인
2017년 유전학자 이네 베카루스는 브랑겔 섬 털매머드 화석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모낭 발달에 관여하는 FOXQ1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을 확인했습니다. 만약 이런 돌연변이로 털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할 경우 매머드는 추운 환경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멸종의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또한 OR 5A1이라는 유전자의 변이도 발견됐는데, 이 유전자는 베타 이오논이란 화학 물질을 감지하는 후각 수용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식물의 꽃에서 나오는 화합물로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건 브랑겔의 털매머드가 꽃 냄새를 잘 맡지 못했고, 이는 먹이 활동마저 제대로 못 했을 가능성으로도 이어집니다.
인슐린 분비와 연관된 LURG3 유전자에도 돌연변이가 발견됐는데, 포유류에서 이 유전자가 망가지면 당뇨병이나 설사,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이처럼 외딴섬에 고립되어 해로운 돌연변이가 축적되며 개체군이 멸종에 이르는 과정을 돌연변이 붕괴라고 합니다.
로라 아늑해 박사가 제기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바로 'Ice 현상'이었습니다. 약 5천5백 년 전부터 4천 년 전, 브랑겔 섬 지역의 기온은 점차 온난해지면서 이곳에는 비가 자주 내렸습니다. 문제는 비가 눈 위에 내려 얼어붙는 바람에 매머드들이 눈을 헤치고 풀을 뜯어먹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아주 단기간이었지만 이런 Ice 현상 탓에 매머드들이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눈이 얼어붙어 동물이 굶어 죽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데, 2003년 캐나다에서는 사향소 2만 마리가, 브랑겔 섬에서도 순록 수천 마리가 굶어 죽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복합적 요인들은 서로 얽혀 털매머드의 멸종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유전적 취약성으로 인해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중금속 오염과 Ice 현상이라는 환경적 재앙이 겹쳐지면서 개체군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감소했습니다. 소규모 개체군일수록 환경 변화나 우연한 사건에 더욱 취약하며, 일단 임계점 이하로 개체수가 감소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브랑겔 섬의 털매머드는 바로 이러한 '멸종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입니다.
피라미드가 지어지던 시절, 머나먼 외딴섬에서는 지구상 마지막 매머드가 최후의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습니다. 지질 시대를 풍미했던 녀석들이었지만 그 끝은 참으로 안쓰러웠습니다. 털매머드의 멸종은 단일 원인이 아니라 유전적 붕괴, 환경오염, 기후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고립된 환경에서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소규모 개체군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많은 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편으로는 소중한 화석 파편 하나에서 그들의 삶과 최후를 과학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X0y1aPq8Qw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