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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렁이를 흙을 비옥하게 만드는 고마운 존재로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미국 중서부 숲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외래 지렁이의 침입으로 울창한 숲 생태계가 파괴되고, 이것이 지구 온난화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미네소타대학교 유경수 교수의 연구를 통해 드러난 지렁이의 두 얼굴, 그 놀라운 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빙하기 이후 생태계: 지렁이 없는 숲의 평화
약 2만 년 전 거대한 빙하는 미국 오대호 지역까지 침투했습니다. 이 빙하기로 인해 미국 중서부 지역의 토양에서는 추위를 견디지 못한 토착 지렁이들이 완전히 멸종했습니다. 1만 년 전쯤 빙하가 물러간 후 숲은 다시 살아났지만 지렁이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생물학자들은 지렁이 개체군이 1년에 약 5에서 10m를 이동한다고 말합니다. 빙하기가 끝난 11,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렁이들이 부지런히 이동했다고 해도 고작 55에서 110km밖에 이동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이는 서울에서 대전까지도 안 되는 거리입니다.
미네소타, 위스콘신, 미시간주 등 빙하가 덮였던 5 대호 지역의 숲들은 지렁이란 분해자가 없는 땅에 적응했습니다. 물론 분해자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숲의 토양에는 곰팡이와 박테리아 같은 수많은 미생물 분해자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낙엽을 먹어 잘게 부숴주는 지렁이가 없는 탓에 이곳 토양의 유기물들은 아주 천천히 분해됐습니다. 지렁이가 없는 흙과 있는 흙은 유기물의 분해 속도가 두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특히나 기온이 낮은 기후대에서는 곰팡이와 박테리아의 활동이 더디기 때문에 낙엽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새로 쌓이는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이로 인해 이 숲의 토양은 수백 년에 걸쳐 적게는 10cm에서 많게는 20cm까지 낙엽이 두껍게 쌓인 두식층으로 변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두터운 낙엽층은 미 중서부 숲 생태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겨울철 땅이 얼지 않도록 토양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시켜 줬고 여름에는 반대로 수분 증발을 막아 땅을 시원하고 촉촉하게 만들어줬습니다. 덕분에 수많은 식물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곤충이나 새, 양서류 등 여러 동물들의 안식처가 됐습니다. 이 평화로운 생태계는 지렁이 없이도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며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아시아 점핑웜: 새로운 파괴자의 등장
유럽에서 건너온 지렁이들이 미국 숲에 처음 침입한 후, 더 심각한 2차 침공이 시작됐습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가 원산지인 지렁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건드리면 펄떡펄떡 뛰는 특징 때문에 아시안 점핑웜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유경수 교수는 "점핑웜이 만들어내는 흙은 유럽 지렁이들이 만들어내는 흙하고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합니다. 유럽 지렁이들은 숲에 흙을 단단하게 만드는 반면, 점핑웜은 흙을 완전히 느슨하게 만듭니다. 원두커피 만들고 나서 말리고 났을 때의 그 푸석푸석한 가루처럼 흙이 변합니다.
점핑웜이 있는 언덕을 걸으면 걸으면서 흙이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아시아 지렁이들이 점령한 토양에서는 낙엽이 빠르게 사라지는 건 물론 흙이 식물 뿌리에 단단히 붙어 있지 못해 식물 뿌리가 쉽게 뽑혀 버리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정말 미스터리한 사실은 이 침입 아시아 지렁이들이 원산지인 한국에서는 이런 특성을 띠지 않는다는 겁니다. 유독 미국에 침입해 온 녀석들만 흙을 이렇게 가루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렁이의 개체수가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분자생물학적인 새로운 특징이 생긴 건지는 추가적으로 연구를 더 해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시아 지렁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대체로 무성 생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소수 개체만 유입돼도 급속도로 퍼질 수 있습니다. 재밌는 건 아시아 점핑웜들은 기존 침입으로 자리 잡은 유럽의 이슬지렁이를 몰아내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슬지렁이들은 대체로 땅을 파가며 생활하는데 점핑웜들이 흙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놓는 탓에 이슬지렁이들이 더 이상 굴 자체를 만들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리게 됩니다. 침입자들 간의 경쟁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물론 점핑웜과 공존하는 유럽 지렁이들도 있습니다. 아포렉토데아 속의 지렁이들은 낙엽을 먹지 않고 흙 알갱이만 먹고살기 때문에 점핑웜과 경쟁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지구온난화: 지렁이가 가속화하는 기후 위기
유경수 교수는 낙엽층이 사라지면서 단풍나무 같은 어린 묘목들이 큰 타격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미네소타 같은 경우 단풍나무들은 위에 커다란 나무들이 쓰러질 때까지 아주 작은 키로 수십 년을 지낼 수 있습니다. 때를 기다리는 거입니다. 근데 그 수십 년을 기다리는 동안 낙엽층이 보호를 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보호해 주는 낙엽층이 사라지는 겁니다. 추위에서 보호해 주고 사슴들한테 먹히는 데서 자기 몸을 숨겨 주는 낙엽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2011년 연구에 의하면 유럽지렁이의 침입이 시작된 위스콘신주의 숲에서 땅에 둥지를 트는 새인 오븐버드와 갈색 집박이의 최종 생존율이 지렁이의 침입으로 인해 절반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도롱뇽과 같은 양서류들에게는 습기가 있는 낙엽층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들 역시 낙엽층이 사라지게 되면서 살 곳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2022년 뷔르츠부르크대학교의 생태학자인 마티아스 요원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캐나다 앨버타주에서는 침입 외래지렁이 때문에 육상 절지동물의 개체수는 61%, 생물량은 27%, 종 풍부도는 18%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구 온난화와의 연관성입니다. 지렁이가 없었던 땅에 지렁이들이 정착해 낙엽을 먹어치우면서 유기물이 빠르게 분해돼 이전보다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됩니다. 빙하가 녹으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더 넓어지고 여러 항로들이 개척되고 항구 도시들이 만들어지면서 자연히 사람들이 유입됩니다. 유경수 교수는 이 과정에서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거나 지렁이를 미끼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지렁이가 없던 땅에 지렁이가 유입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스웨덴, 핀란드, 알래스카 등 극지방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침입 지렁이를 제거할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지렁이는 한번 땅에 들어가면 없앨 수가 없습니다. 유럽 지렁이 같은 경우에는 미네소타에서는 졌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해야 되지 않을까 했을 때는 이미 늦은 거였습니다. 지렁이를 잡는 방법 중 하나는 2.5L 정도 되는 물에다가 겨자가루를 40g 정도 풀어서 땅에 뿌리면 지렁이가 땅 밖으로 기어 나왔을 때 잡는 건데, 이걸 그 넓은 숲에 다 뿌릴 수도 없을뿐더러 아시아 지렁이들은 이 겨자가루에 잘 반응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퇴치보다는 지렁이가 최대한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미네소타주에서는 작년 7월 1일부터 주 내에서 점핑웜을 소유, 수입, 판매, 운송, 번식시키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침입 지렁이 문제는 인간 중심적 자연관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지렁이 자체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유경수 교수가 말했듯이 지렁이는 정말 두 얼굴을 가진 동물입니다. 우리가 자연 속에 있는 생명을 볼 때 우리 중심으로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존 토양에 쭉 살아왔던 지렁이들은 여전히 농경지의 흙을 비옥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새로운 환경에 침입한 지렁이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6lZ1umwo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