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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경북 영양군에서 발견된 영양사슴하늘소는 사슴벌레 같은 턱과 장수하늘소를 닮은 긴 더듬이로 곤충 애호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곤충의 진짜 정체는 하늘소도 사슴벌레도 아닌, 독자적인 계통의 '사슴하늘소붙이과'에 속하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발목 마디 수와 유충의 형태, DNA 분석을 통해 밝혀진 영양사슴하늘소의 비밀은 한국 곤충학계에 중요한 이정표를 남겼으며, 특히 180만 년 전 서해가 육지였던 시절부터 한반도에 고립되어 독자적인 진화를 이어온 이 곤충의 기원은 고생물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영양사슴하늘소의 분류학적 논쟁과 진실
영양사슴하늘소는 그 이름과 달리 하늘소가 아닙니다. 장수하늘소나 유리알락하늘소 같은 진짜 하늘소는 하늘소과에 속하지만, 영양사슴하늘소는 사슴하늘소붙이과라는 별도의 분류군에 속합니다. 사슴하늘소붙이과는 트리크테노마와 아우토크립트 두 개의 속으로 나뉘는데, 트리크테노마스 속의 구성원들은 몸 전체에 보송보송한 털이 나 있고 앞가슴 측면이 매끈한 반면, 아우토크립트 속에 속한 종들은 몸에 털이 별로 없고 앞가슴 측면에 작은 가시가 나 있습니다.
영양사슴하늘소의 가장 특징적인 구조는 더듬이 끝자락에 있습니다. 명칭에서 '트리'는 숫자 3을, '테너'는 빗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영양사슴하늘소의 더듬이 끝자락에는 정확히 세 개의 빗살 같은 마디가 관찰됩니다. 이는 진짜 하늘소의 더듬이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구조이며, 오히려 사슴벌레의 더듬이와 유사한 형태입니다. 이 때문에 1800년대 초 처음 발견됐을 때는 거대한 턱과 빗살 모양의 더듬이를 근거로 사슴벌레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러나 1840년경부터 전체적인 형태가 톱하늘소 무리와 너무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날개와 배마디 같은 다른 형태적 특징을 근거로 하늘소과로 재분류되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00년대 초반 벨기에의 곤충학자 오귀스트 라미에르의 연구였습니다. 그는 영양사슴하늘소의 발목 마디 수가 앞다리 다섯 개, 가운데 다리 다섯 개, 뒷다리 네 개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발목 마디 수가 모두 다섯 개인 하늘소나 사슴벌레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였습니다.
발목 마디 수는 딱정벌레목 곤충 분류에서 매우 중요한 형질입니다. 예를 들어 비슷하게 생긴 두 곤충이라도 하나는 발목 마디 수가 다섯 개씩인 벌레이고, 다른 하나는 네 개씩인 무당벌레로 서로 아주 먼 관계일 수 있습니다. 1900년대 초반 발견된 영양사슴하늘소 애벌레의 형태는 이러한 분류학적 논란에 거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유충의 생김새가 하늘소나 사슴벌레의 유충과는 확실히 달랐고, 오히려 거저리상과에 속한 나무껍질벌레과, 썩덩나무하늘소과, 홍날개벌레의 유충들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이후 여러 학자들의 DNA 분석 결과, 영양사슴하늘소가 속한 사슴하늘소붙이과는 거저리상과의 나무껍질벌레과, 썩덩나무하늘소과와 매우 가깝고 하늘소과와는 꽤 먼 관계임이 명확히 밝혀졌습니다.
한국 개체군의 유전적 고립과 180만 년의 역사
영양사슴하늘소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는 바로 그 분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영양사슴하늘소와 동일한 종은 주로 중국 내륙 산지에 넓게 분포하는데, 그 거리가 무려 2,000km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같은 그룹의 다른 종들도 대부분 동남아나 중국 내륙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어, 자발적인 이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한반도에 들여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이승현 박사와 알랭 드루 박사는 중국과 한국에서 최대한 많은 영양사슴하늘소를 모아 DNA 분석을 실시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에서 채집된 개체들(파란색)은 서로 가깝게 묶여 있었고, 중국에서 채집된 개체들(붉은색)과는 뚜렷한 유전적 거리를 보였습니다. 이는 중국 개체군과 한국 개체군이 유전적으로 명확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만약 중국의 영양사슴하늘소가 인위적으로 한국에 유입되었다면, 중국인이 한국으로 건너온다고 해서 DNA가 바뀌지 않는 것처럼, 이 정도의 유전적 차이를 보일 수 없습니다. 더욱이 외부에서 우연히 유입된 개체군은 대부분 소수의 개체들만 들어오고 그들의 자손이 퍼지는 형태인데, 이런 경우에는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낮아 서로 거의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의 개체들끼리도 유전적 차이가 조금씩 존재했습니다. 이는 중국으로부터 최근에 유입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번식해 왔다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영양사슴하늘소는 언제부터 중국 개체군과 분리된 것일까요? 연구팀은 분자 시계 분석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영양사슴하늘소는 약 180만 년 전부터 유전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과거 동아시아에 널리 분포하던 영양사슴하늘소 개체군이 어떤 지질학적 사건에 의해 지금처럼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80만 년 전, 한반도와 중국 사이의 서해는 지금과 달리 육지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한반도 남쪽과 중국을 연결하는 '민절'이라는 고원 지대가 존재했습니다. 현재 영양사슴하늘소가 분포하는 지역들은 대부분 산지이고 북방계라기보다는 온대에 가까운 기후 특성을 보입니다. 이승현 박사는 과거 북쪽에 살던 영양사슴하늘소가 기후 변화에 따라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결국 이 서해 육지와 민절 고원 지대가 마지막 피신처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후 서해가 바다로 변하면서 한반도의 개체군은 중국 개체군과 완전히 고립되어 독자적인 진화 경로를 걷게 된 것입니다.
전설 속 곤충의 생태 미스터리
영양사슴하늘소는 몸길이가 4~6cm에 달하는 대형 곤충임에도 불구하고, 그 생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자연계에서 성체가 어디에 서식하고, 알은 어디에 낳으며, 유충과 성충은 무엇을 먹는지, 심지어 육식인지 초식인지조차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채집이 거의 되지 않아 '전설 속 곤충'이라 불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022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의 조희욱, 김상기 박사와 울진왕피천생태공원의 권민철 박사 등이 주도한 연구를 통해 사육 환경에서 일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논문에는 영양사슴하늘소가 나무 틈에 최대 600개 이상의 알을 낳는 모습이 관찰되었으며, 유충과 번데기의 자세한 형태가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연계에서의 생태는 베일에 싸여 있고,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양사슴하늘소가 2010년대 들어 갑자기 많이 채집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승현 박사는 이것이 실제 개체수의 증가가 아니라 '믿음'의 효과라고 설명합니다. 2001년 영양에서 처음 발견되었을 때 뉴스가 났지만, 왕복 12시간 운전을 해서 영양까지 갈 용기를 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동해나 삼척에서 간간이 잡힌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한 번밖에 잡히지 않은 곤충을 찾아 먼 길을 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등화 채집을 하면 꽤 많은 수가 날아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양이나 삼척에 가면 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고, 한 사람이 성공하면 두 사람이, 두 사람이 네 사람이 되는 식으로 채집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즉, 실제 개체수는 그대로인데 잡히는 개체수만 늘어난 상황인 것입니다.
이승현 박사는 향후 영양사슴하늘소 성체의 장 속 DNA를 분석해 이들이 자연 상태에서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지 등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영양사슴하늘소의 생태적 지위와 보전 전략을 수립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가 될 것입니다.
영양사슴하늘소는 발목 마디 수와 유충의 형태, DNA 분석 결과를 종합했을 때 사슴벌레나 하늘소와는 다른 독자적인 사슴하늘소붙이과에 속하는 곤충입니다. 한국의 개체군은 약 180만 년 전부터 중국 개체군과 유전적으로 분리되었으며, 이는 서해가 바다로 변하면서 한반도에 고립된 결과입니다. 국내 곤충학자들의 연구로 전설 속 곤충의 비밀이 한 꺼풀 벗겨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생태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한국산 영양사슴하늘소는 서식지와 유전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지닌 만큼, 생물자원으로서의 추가 연구와 꾸준한 관리 및 보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69xik7YKqa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