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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범고래는 단순한 괴력이 아닌 고도화된 사냥 기술과 뛰어난 지능으로 해양 생태계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해역에서 발견되는 간이 사라진 백상아리 사체부터 집단마다 다른 고유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적 특성까지, 범고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지능적인 생명체입니다. 이들의 생태를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 사회와 놀랍도록 유사한 구조와 행동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범고래
범고래

백상아리 사냥의 비밀: 정교한 간 적출 기술

남아프리카는 매년 백상아리들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간이 사라진 백상아리 사체가 종종 목격되는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백상아리들끼리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2006년에서 2013년까지 165마리의 백상아리를 추적 관찰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백상아리의 간을 타깃으로 하는 범인은 바로 범고래였습니다. 행동 전문가인 엘리사 슐츠 먼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범고래는 모계 사회로 구성된 집단생활을 하며 여러 마리가 협력하여 백상아리를 사냥합니다. 이들은 백상아리를 세게 들이받아 기절시킨 후, 마치 외과 전문의가 수술을 하듯 백상아리의 간만 아주 정교하게 적출해서 먹습니다. 스콧 앤더슨 박사는 백상아리의 간은 지방이 많고 맛이 좋기 때문에 범고래에게는 아주 맛있는 간식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범고래의 이러한 공격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포유류이기 때문입니다. 범고래의 골밀도는 백상아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몸집이 비슷한 백상아리에게도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범고래는 킬러라는 이름에 걸맞게 백상아리는 물론 물개, 바다사자 심지어 혹등고래까지 사냥하는 바닷속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성체 몸길이는 5에서 8m, 무게는 평균 5톤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최상위 포식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괴력이 아닌 고도화된 사냥 기술 덕분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최대 압력이 백상아리보다 5배나 높은 19,000 psi라고 말하지만, 바다악어의 압력이 7,700인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인터넷에 떠도는 범고래의 압력은 좀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음파 탐지 능력: 100m 밖 연어도 구별하는 초정밀 센서

범고래의 사냥 기술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엄청나게 정교한 음파 인식 능력입니다. 뉴질랜드 지역의 범고래들은 청어를 사냥할 때 물거품을 뿜어내 이들이 공 모양이 되게끔 몰아넣은 후 수십 수백 마리의 청어 떼를 꼬리로 후려쳐 기절시킨 다음 잡아먹습니다. 북태평양 지역의 범고래는 지방질이 가장 풍부한 친환경 연어만을 골라서 잡아먹는데, 여러 종류의 연어 중 친환경 연어를 타깃으로 사냥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정교한 음파 인식에 있습니다. 돌고래와 마찬가지로 범고래 역시 머리 쪽에 지방질로 이루어진 멜론 구조가 있고, 여기로 고유한 음파를 내보내며 이 음파가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는 신호를 인식해 먹잇감을 찾거나 방향을 탐색합니다. 그런데 범고래의 이 인식 능력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지난 2010년 이빨고래 전문가인 윌로우 박사는 연어마다 형태와 크기가 조금씩 다르고, 그 결과 음파가 부딪혔을 때 반사되는 신호 역시 종류에 따라 미세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놀랍게도 범고래는 100m도 넘게 떨어진 곳에서 물고기마다 반사되는 음파를 정교하게 구분해 어떤 음파가 친환경 연어의 몸에서 반사된 것인지 정확히 인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범고래는 이런 정교한 음파 탐지 기술 덕분에 수많은 연어, 더 나아가 수십 수백 종류의 물고기들 중에서 정확히 자신이 좋아하는 영양 만점의 연어만을 골라서 사냥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숙련된 소믈리에가 수백 가지 와인 중 특정 포도밭의 특정 빈티지를 구별해 내는 것과 같은 수준의 정교함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범고래는 같은 종이라도 집단마다 상호 소통에 사용하는 음파의 주파수 대역폭이 각기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집단마다 고유 언어가 있기 때문에 집단이 다르면 서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마치 인류가 한 종이라도 각 나라마다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는 범고래가 단순한 본능적 행동을 넘어 문화적 차이를 가진 고등 생명체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지능과 감정: 인간 다음 가는 고등 인지 능력

범고래의 지능과 인지력 수준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들의 뇌는 약 6kg 정도로 크기뿐만 아니라 신체 크기와 비율로 지능을 추정하는 대뇌화 지수 역시 인간과 돌고래의 뒤를 잇고 침팬지나 고릴라보다 더 높은 축에 속합니다. 지난 2004년 고래의 뇌를 연구하는 로리 마리노 박사는 범고래의 뇌 내 피질이 마치 인간처럼 주름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주름에 접힌 정도는 인간이나 돌고래보다 더 높아 신경세포가 많이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공간을 기억하고 탐색하는 대뇌변연계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로리 마리노 박사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범고래의 뇌 안쪽에 있는 뇌섬엽 구조였습니다. 이 영역은 공감, 자기 인식 등 감정과 관련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으로,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주인공인 황시목 검사가 감정이 거의 없는 캐릭터로 묘사된 것도 바로 어린 시절 뇌 수술로 이 부분이 손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범고래는 뇌섬엽이 발달해 있어 집단 내 동료들과의 소통과 감정 교류는 물론 조련사의 감정까지 인식할 수 있으며, 재미를 위해 먹잇감을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거울 마크 테스트 영상을 보면 범고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으며, 거울을 보며 공기방울을 만들어 내는 등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이는 자기 인식 능력을 가진 극소수 동물에만 속하는 특성입니다. 범고래의 모계 중심 사회에서 할머니 범고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범고래 암컷은 여타 포유류와는 달리 43세에서 폐경 단계에 도달한 이후에도 무려 40년을 더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폐경기 이후에 이렇게 40년 이상을 사는 동물은 인간과 혹등고래 그리고 범고래가 유일합니다. 동물 행동 전문가인 브랜트 박사는 15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할머니 범고래가 이들의 주요 먹잇감인 연어의 길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사냥할 때 집단을 이끌고 행동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연어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시기에는 젊은 암컷보다 할머니 범고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합니다. 파타고니아 발데스 연안에 서식하는 범고래는 바닷물이 밀려오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계산해 해안가까지 올라와 바다사자를 사냥합니다. 이런 사냥법은 자칫 잘못하면 육지에 갇힐 수 있기 때문에 큰 리스크가 뒤따릅니다. 그래서 이들을 이끄는 할머니 범고래는 어린 범고래들에게 해안가에서 바다사자를 사냥하는 법을 학습시키기 위해 숙달될 때까지 해초 등을 이용해 연습을 시킵니다. 이런 과정을 통과한 개체들만 실제 바다사자 사냥에 나설 수 있습니다. 이런 사냥법은 이 범고래 집단의 고유한 문화로 다른 범고래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입니다. 범고래의 이러한 특성들을 종합해 보면, 이들은 단순한 포식자를 넘어 고도의 지능과 감정을 가진 사회적 생명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프리 윌리'의 제시와 소년의 우정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과거 수족관에 갇힌 고래들이 느꼈던 고통들이 보다 객관적이고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고도로 발달한 감정과 인지 능력을 가진 범고래를 좁은 수족관에 가두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구속을 넘어 정신적 고문에 가까운 행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UK5ahQppN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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