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구상에서 가장 귀여운 생명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바다사자는 북태평양에서 남반구까지 넓은 해역에 분포하지만, 흥미롭게도 북대서양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지리적 장벽과 생태적 적응의 복합적 결과입니다. 바다사자의 분포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생물지리학의 흥미로운 사례이자, 종의 진화와 환경 적응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바다사자
바다사자

북대서양에 바다사자가 없는 이유

바다사자는 기각류에 속하는 해양 포유류로, 귓바퀴가 톡 튀어나와 있고 상체를 세워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귓바퀴 없이 구멍만 뚫려 있고 배를 땅에 대고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는 물범과 구분되는 주요 특징입니다. 바다사자과에는 물개아과와 바다사자아과가 포함되며, 덩치 면에서 바다사자가 물개보다 조금 클 뿐 둘은 가까운 관계입니다.
전 세계 바다를 살펴보면 북태평양에는 캘리포니아 바다사자와 덩치가 큰 바다사자가, 적도 부근에는 갈라파고스 물개가, 남반구에는 남아메리카 물개, 남아프리카 물개, 뉴질랜드와 호주 남부에 사는 남방 물개까지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대서양에는 사촌인 물범과 바다코끼리는 살고 있음에도 바다사자는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바다사자의 생태적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다사자는 다른 기각류들처럼 차가운 물을 선호합니다. 적도 근처 갈라파고스 제도에 바다사자가 서식할 수 있는 이유는 표층은 남적도 해류 덕분에 따뜻하지만, 섬 주변 해역에는 차가운 크롬웰 저층수가 위로 올라와 수온이 낮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아메리카 물개가 위도가 낮은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차가운 훔볼트 해류 덕분입니다. 결국 북대서양에 바다사자가 없는 이유는 남대서양 쪽에 살던 바다사자가 따뜻한 적도 난류로 인해 북대서양으로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수온이라는 환경 요인이 종의 분포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임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입니다.

적도를 넘은 기적과 지리적 장벽의 형성

바다사자의 초기 조상은 2,500만 년 전 북태평양에서 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따뜻한 적도 해역을 넘어 남반구로 퍼져 지금의 물범과 바다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막힌 타이밍과 운입니다.
2009년 일본 소다이 국립 대학원의 타카히로 요시자와 박사는 바다사자과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북태평양에 살던 녀석들 중 일부가 약 700만 년 전 파나마 지협이 서서히 막히는 과정에서 차가운 물길을 타고 적도를 넘어 남쪽으로 내려가는 대모험에 딱 한 번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마이오세 후기의 지구는 극심한 냉각기에 접어들고 있었는데, 초기 바다사자가 절묘한 시점에 적도를 넘어 남반구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손들이 훔볼트 해류 등 차가운 해류를 타고 남미, 아프리카, 호주로 퍼져 나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북대서양으로 가던 해로 주변에는 저위도 지역에 서식하는 고대 바다코끼리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시다 박사는 논문에서 이 때문에 바다사자가 북대서양으로는 건너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초기 물범과의 조상도 적도를 건넜습니다. 2010년 계통분류학자인 컬튼과 유전학자인 스토르백 박사는 지금의 게잡이물범 같은 남물범류들 또한 600만 년 전쯤 북태평양에서 적도를 넘어 서해안을 따라 진출한 종들의 후손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바다사자가 한 번 적도를 넘어 남반구로 진출한 이후 다시 북대서양으로 올라오는 것은 극히 어려웠습니다. 남아프리카나 남미 쪽에서 올라가는 길은 따뜻한 적도 해류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특히 남아메리카 동쪽 해안은 고수온일 뿐만 아니라 아마존강 하류에서 초당 20만 톤씩 쏟아져 나오는 흑장물 때문에 바닷물의 염도가 낮고 햇빛을 차단해 국지적으로 플랑크톤이 잘 자라지 못하는 구역이 생깁니다. 해양학자들은 이 구역을 아마존강 플룸 지대라고 일컬으면서 보이지 않는 지리학적 장벽을 형성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지리적 장벽이 바다사자가 남미 쪽에서 북대서양으로 진출하는 경로를 완전히 차단한 것입니다.

호빙성 형질과 생태적 적응의 한계

그렇다면 북극해를 통해 돌아서 가는 경로는 어땠을까요? 지금의 물범들이 북극해를 통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펄튼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북극해를 통한 이동은 물범들만이 누리는 이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북방물범 아과는 약 1,100만 년에서 1,400만 년 전 북극해에 연중 얼음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진화했습니다. 이들은 진화 과정에서 얼음을 좋아하는 '호빙성' 형질을 획득해 북극 환경에 완벽히 적응했습니다. 덕분에 550만 년 전 베링 해협이 열렸을 때 북극을 통해 대서양 쪽으로도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다사자는 호빙성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물범과 바다사자의 양육 방식 차이는 이러한 적응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물범은 얼음 위에서 빠르게 새끼를 키워냅니다. 예를 들어 두건물범이나 하프물범의 양육 기간은 보름을 채 넘기지 않습니다. 얼음이 녹기 전 새끼가 혼자 수영할 수 있어야 하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지방을 빠르게 채워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범 젖의 지방 함량은 50에서 60%에 달합니다.
반면 바다사자는 새끼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먹이 잡는 법을 가르치며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데리고 다니며 양육을 합니다. 이처럼 바다사자는 얼음 환경에 적응한 종이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탓에 아직 북극해를 건너 북대서양으로 진출했던 녀석들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장벽 때문에 서식지가 제한된 사례는 바다사자뿐만 아닙니다. 혹등고래는 전 세계 바다에 살지만 남반구와 북반구에 사는 혹등고래 개체군은 서로 만나지 않습니다. 이들은 여름에 극지 쪽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겨울이 되면 저위도로 돌아와 새끼를 낳고 기르는데, 남반구와 북반구의 계절이 반대라서 두 개체군이 마주치는 일은 없습니다. 유전자 분석 연구에서도 이들은 서로 섞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발리와 롬복을 가로지르는 월리스 선 역시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이 해역의 수심이 너무 깊어 이 두 섬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빙하기 때도 육지로 연결되지 않았고, 이 탓에 월리스 선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호랑이, 코뿔소, 오랑우탄이 사는 반면 오른쪽에는 유대류가 사는 등 완전히 격리된 생물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남방구에 사는 펭귄이 북방구에 없는 이유도 따뜻한 적도 해류를 건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다뱀이 대서양에서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동남아 쪽에서 약 300만 년 전에 기원한 바다뱀은 북태평양 쪽으로는 파나마 지역으로 막혀 있어 대서양으로 진출하지 못했고, 남미 아래쪽으로는 추워서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남아프리카 쪽으로 진출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이 해역에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다뱀은 바다에 살지만 빗물을 마셔가며 살아갑니다. 아프리카 남서부는 큰 산맥이 구름을 막고 있고 서쪽에는 차가운 해류가 흘러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아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지역입니다. 결국 식수의 부족이 바다뱀의 대서양 진출을 막았습니다.
바다사자의 분포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종의 기원 시기, 차가운 해류의 존재, 경쟁자의 유무, 기후 변화, 그리고 육아 방식과 같은 생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만리장성보다 더 높고 단단한 벽이 존재하며, 때로는 자연이 보여준 것처럼 굳이 그 벽을 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다른 길도 얼마든지 많기 때문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PE8pZlx5E_I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6/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