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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기묘한 생명체를 꼽으라면 단연 문어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눈 깜짝할 새 색을 바꾸고 피부 질감까지 변화시키는 위장술, 그리고 무척추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도구를 사용하고 인간을 식별하는 놀라운 지능까지 갖춘 문어는 진화의 가장 독특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문어가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지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피부로 세상을 보는 문어의 위장 메커니즘
문어의 가장 놀라운 능력은 단연 변장술입니다. 파충류인 카멜레온이 호르몬을 분비해 약 20초 정도의 시간을 들여 색을 변화시키는 반면, 문어는 정말 눈 깜짝할 새 색을 변화시키고 심지어 피부의 질감마저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문어의 피부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문어의 피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면에는 크로마토포라는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의 염료로 찬 풍선 같은 색소 주머니들이 각각 분포합니다. 이 색소 주머니들은 근육으로 둘러싸여 있고, 필요한 색을 드러낼 때는 해당 염료가 든 색소 주머니를 늘립니다. 마치 염료가 들어찬 풍선을 부풀리면 염료의 색깔이 드러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문어는 이 수많은 색소 주머니들을 늘렸다 줄였다 하며 줄무늬나 반점 같은 패턴을 만들어 색깔을 변화시킵니다.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이외의 색을 만들 때는 크로마토포어 밑에 분포한 홍색 소포를 이용하는데, 이것에 들어있는 리플렉틴이라는 단백질이 특정 파장의 빛을 산란시켜 파란색이나 초록색 같은 금속성 구조 색을 띨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피부 맨 안쪽에 분포한 류코포어라는 세포층에서는 대부분의 빛을 반사시켜 흰색도 만들 수 있습니다. 피부를 둘러싼 돌기들은 시시각각 오돌토돌하게 변하면서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질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에게는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문어는 색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생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주변 환경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와 거의 똑같이 몸 색깔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2015년 매사추세츠 주립대 앰허스트의 동물행동학자 데스몬드 박사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2 점박이 문어의 피부 조직만 떼어다가 실험했는데, 빛의 밝기에 따라서 피부 색소 주머니의 크기가 변화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문어는 뇌나 중추 신경계를 거치지 않고도 피부에 있는 광 수용체만으로 빠르게 색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들의 피부에서는 눈의 망막 세포에서 발견되는 옵신과 로돕신이라는 단백질이 발견되었는데, 이 역시 문어가 피부로 세상을 감지한다는 증거였습니다.
8개의 다리에 분산된 뇌, 독립적 신경계의 비밀
문어의 또 다른 놀라운 특징은 바로 분산된 신경계입니다. 문어의 몸에는 5억 개의 뉴런이 있는데, 이는 같은 연체동물인 달팽이보다 무려 2만 5천 배나 많은 수치이며, 고양이보다 2배 많고 개와 비슷한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문어의 5억 개 뉴런 중 약 3분의 1만이 뇌에서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나머지 뉴런들의 대부분은 8개의 다리에 분포해 있습니다.
워싱턴 대학교의 도미니크 시애틀리 박사는 2년 전 열린 우주 생물학 콘퍼런스에서 문어가 음식을 찾아 나설 때 뇌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게 아닌 여러 개의 발이 독립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인지하기 때문에 뇌가 작아도 다른 동물들에 비해 뛰어난 인지 및 학습 능력을 지닐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각 다리가 독립적으로 환경을 감지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문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분산 신경계 덕분에 문어는 놀라운 학습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줍니다. 문어가 병뚜껑을 여는 행동이 관찰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며, 두족류 연구의 권위자인 롤랜드 앤더슨은 2010년에 문어가 인간을 개별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옷을 바꿔 입어도 문어는 누가 누군지 안다는 얘기입니다. 더 나아가 2019년 카메론 뭍은 이 박사는 Y자 유리관 실험에서 문어가 질감이 거친 유리관 쪽으로 발을 뻗어야 먹이 보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학습했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문어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1963년 엔 보아 문어의 빨판에서 곶감의 파리 촉수가 발견된 것을 근거로 이들이 곶감의 파리 촉수를 훔쳐 공격이나 방어용 도구로 사용한다는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고, 최근에는 코코넛 문어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코코넛 문어는 코코넛 껍데기를 들고 다니다가 마땅한 피신처가 없는 곳에서는 코코넛 껍데기에 들어가 숨는데, 코코넛이 없을 때는 버려진 플라스틱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해양 생물학자인 줄리안 핀 박사는 문어의 이런 행동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한 계획이나 예측이 수반된 지능적 도구 사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생태적 지능 가설과 진화의 수렴
문어의 지능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조직이나 사회를 이루지 않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지능의 기원을 논할 때 사회적 지능 가설이 큰 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가설은 인간이나 침팬지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지능을 갖춘 동물들에게 적용되는데, 예를 들어 과거 인류의 조상은 무리를 이뤄 서로 협력하기 시작하면서 복잡한 사고를 하게 됐고 이를 발판으로 더 크고 정교한 뇌가 등장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는 문어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문어의 지능은 과거 이들이 껍데기를 잃게 되면서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고도화된 생존 전략으로서 진화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지구 바다에는 세피아, 노틸러스, 엔도세라스, 암모나이트 같은 문어의 조상들이 살고 있었는데, 모두 껍데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 1억 4천만 년 전 중생대 중후반 플라코돈트, 모사사우루스 등 단단하고 뾰족한 이빨로 무장한 해양 파충류들이 등장하면서 두 종류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두 종류들은 이들의 공격을 피해 점점 더 빠르고 재빨라져야 했고 껍데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일본의 동물학자 츠카모토 카와다 쏘는 이를 두고 문어가 방어 지향형에서 운동 지향 동물로 전환했다고 표현했습니다. 문어는 껍질을 벗고 민첩해졌지만, 밖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야들야들한 몸은 여전히 약점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위장술과 높은 지능이라는 영리한 전략들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의 첸 쳉 박사는 문어 같은 두족류에게서 지능의 수렴 진화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장류와 조류, 곤충은 계통은 다르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진화시킨 것처럼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은 계통이 다르지만 한쪽에서는 인간이란 종이 지능을 갖게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문어 녀석이 지능을 갖게 되는 수렴 진화가 일어났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진화 생물학자들은 지능의 기원을 설명할 때 사회적 가설과 더불어 생존을 위한 생태적 지능 가설도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난 2018년 네이처에는 인간의 고도화된 뇌가 사회적 협동이 아닌 먹이를 찾아 가공하고 천적을 피하려는 아주 기본적인 생존 활동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생태적 지능 가설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지능의 기원이 단일한 경로가 아닌 다양한 생태적 압력에 의해 발현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문어는 피부로 세상을 감지하고, 분산된 신경계를 통해 독립적으로 판단하며, 사회적 상호작용 없이도 높은 지능을 발달시킨 독특한 생명체입니다. 이들의 존재는 지능이 반드시 중앙집중식 뇌나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생태적 압력에 의해서도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주 어딘가에는 문어처럼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능을 갖춘 생명체들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출처]
과학드림 - 문어의 놀라운 능력: https://www.youtube.com/watch?v=Xqgnqv7Yx4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