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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에티오피아 하다르 유적지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는 인류 진화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비틀즈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에서 이름을 따온 이 330만 년 전 화석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특징들이 어떤 순서로 진화했는지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두 발 걷기: 큰 두뇌보다 먼저 진화한 인간의 특징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만이 지닌 특징으로 두 발로 걷는 능력, 도구를 만드는 능력, 신체에 비해 큰 두뇌, 도구로 음식을 가공해 먹는 자가 지체화를 꼽았습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고인류학자들은 인류 진화 과정에서 큰 두뇌가 가장 먼저 나타났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수한 두뇌는 인간을 상징하는 가장 큰 징표였고, 초기 인류의 조상 역시 큰 두뇌를 지녔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필트다운인 사건이라는 유명한 사기극에서도 드러납니다. 범인이 고인류의 두개골을 큰 두뇌를 지닌 것처럼 조작한 것도 바로 이런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널드 요한슨이 발견한 루시는 이 믿음을 완전히 산산조각 냈습니다. 루시의 뇌 용량은 약 400cc로 침팬지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허벅지 뼈와 골반 뼈의 구조는 명백히 두 발 걷기를 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루시의 허벅지 뼈는 안쪽으로 모아지는 형태였는데, 이는 현생 인류의 특징과 동일합니다. 걷는 과정에서 한 발이 땅에서 떨어질 때 나머지 한 발로 중심을 잡기 위한 구조입니다. 반면 침팬지를 비롯해 네 발로 걷는 동물들의 허벅지 뼈는 일자로 쭉 뻗어 있습니다. 또한 루시의 골반 뼈는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균형을 잡기 위해 넓은 왕관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 역시 현재 인류의 것과 유사했습니다.
1976년에는 더욱 극적인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고인류학자 메리 리키 박사가 탄자니아 라에톨리 지역에서 36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발자국은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남긴 발자국에 버금가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발견이었습니다. 라에톨리 발자국에는 침팬지의 발에서 볼 수 있는 옆으로 나온 엄지발가락의 흔적이 어디에도 없었으며, 우리 현생 인류처럼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과 나란히 있었습니다.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완벽하게 두 발로 걸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결국 루시와 라에톨리 발자국의 발견으로, 인류 진화 과정에서 큰 두뇌보다 두 발 걷기가 먼저 나타났다는 사실이 명확히 입증되었습니다.
도구 사용: 초기 인류의 생존 전략과 육식의 시작
루시가 살았던 330만 년 전의 아프리카 사바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키가 1미터에 불과했던 이들에게는 천적들이 즐비한 위험한 세상이었습니다. 실제로 '하하'라 불리는 180만 년 전 3살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 화석에서는 왕관 독수리의 발톱에 찍힌 흔적이 발견되었고, 다른 화석에서는 악어의 이빨 자국도 확인되었습니다. 이들은 독수리에게 머리를 낚아채이거나 강에서 물을 마시다가 악어에게 공격당하는 등 포식자의 먹이가 되는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사냥은 꿈도 꾸기 힘들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주로 풀뿌리, 씨앗 등을 주 식량으로 삼았습니다. 두꺼운 턱과 큰 어금니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사우스턴 크로스 대학부의 고인류학자인 요하네스 보야케 교수는 이들이 주로 식물을 먹었던 탓에 건기나 대절에 따라 영양 결핍을 자주 겪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라에톨리에 찍힌 발자국은 어쩌면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아이를 데리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만 했던 루시 가족의 눈물 섞인 발걸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009년 막스 플랑크 인류 진화 연구소의 섀넌 박사는 루시가 채식뿐만 아니라 종종 육식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에티오피아 디카 지역에서 어린 소의 것으로 보이는 330만 년 전의 허벅지뼈를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날카로운 석기로 잘린 흔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섀넌 박사는 이것이 루시가 도구를 사용했으며 육식도 병행했음을 암시하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해당 시기 그리고 이 지역에 살았던 고유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유일했다는 점이 이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물론 루시가 적극적으로 동물 사냥에 나섰던 것은 아닙니다. 고인류학자들은 그들이 몸집이 작았던 탓에 맹수들이 먹다 남긴 동물 사체를 노렸고, 주워진 도구를 활용해 고기 가죽을 벗기거나 뼈를 깨서 골수 등을 먹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루시의 경쟁 상대는 사자나 하이에나가 아니라 대머리 독수리 같은 시체 청소부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단순한 채식 동물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며 도구를 사용하고 육식까지 시도했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생존 전략을 구사했던 종임을 보여줍니다.
협력 사회: 출산과 육아에서 시작된 인간다운 공동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지능과 사회성에 대한 흥미로운 단서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20세기 초반 남아프리카 마카판 계곡의 한 동굴 약 300만 년 전 지층에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인간 얼굴 모양의 자갈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뼈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이 자갈은 발견지에서 약 5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분포하며, 길이는 약 8센티미터로 사람이나 여타 동물이 물어 오기에는 크기가 비교적 컸습니다. 발견지 동굴 지층에서는 홍수의 흔적도 없었던 탓에 자연적으로 이 돌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고고학자인 로버트 베드나릭은 2017년 발표한 논문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는 어떤 사물에서 익숙한 형상을 인지하는 일종의 파레이돌리아 능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파레이돌리아는 화성의 한 언덕을 보고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베드나릭 박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도 자연 속에서 자신의 얼굴과 비슷한 형상을 발견할 줄 알고 이에 호기심을 느낄 정도의 상상력과 추상적 사고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들의 뇌 크기는 침팬지와 유사했지만 그 기능 면에서는 분명 인간다운 진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사회를 구축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출산 과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017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의 고인류학자인 제레미 교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출산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인간은 2족 보행의 결과 산도는 좁아지고 두뇌는 커졌기에, 아기는 어미의 좁은 산도를 빠져나오기 위해 머리를 180도 회전합니다. 따라서 산모 혼자서 아기를 받아낼 경우 목이 부러질 위험이 있어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반면 침팬지는 산도가 넓어 아기가 머리를 회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미가 쉽게 아기를 품에 안을 수 있고 도움 없이 출산이 가능합니다.
제레미 교수는 루시의 경우도 출산을 할 때 아기의 머리가 일정 각도 이상 회전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역시 출산 시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으며, 호모 속에 접어들기 훨씬 이전부터 인류 조상이 꽤 정교한 협력 사회를 이루고 살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런 협력은 단순히 출산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출산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협동이 필요했고, 탄생 이후 1년이 될 때까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기를 보살피기 위해 인류는 다른 영장류들에게서는 굉장히 보기 드문 합동 육아를 하는 집단으로 진화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협력은 인류만의 강력한 무기가 되었고 지금의 문명사회를 이룩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약 330만 년 전 루시가 살았던 시대, 약 27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빛이 출발했을 무렵, 지구에서는 이제 막 영장류의 걸음마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루시는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요? 수백만 년 후 후손에 의해 밝혀질 자신이 인류 진화사의 한 획을 긋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록 200만 년 전 새롭게 등장한 호모 속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지만, 두 발 걷기와 도구 사용, 한 단계 진전된 두뇌, 그리고 협력 사회까지 구축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분명 최초의 인류다운 존재였습니다. 과학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화석 하나에서 수백만 년 전 우리 조상의 삶과 사회를 읽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과학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진정한 마법이 아닐까요.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ZlNs2WcKqu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