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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를 두고 '건망증이 심하다'는 옛말은 이제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현대 과학은 까마귀를 높은 지능의 소유자로 재평가하고 있으며, 이들의 인지 능력은 일부 영장류와 견줄 만한 수준임이 밝혀졌습니다. 과연 까마귀는 얼마나 똑똑하며, 어떤 진화적 메커니즘이 이들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요? 오늘은 까마귀의 놀라운 지능과 그 비밀을 과학적으로 파헤쳐보겠습니다.

까마귀
까마귀

까마귀의 도구 사용 능력과 문제 해결 지능

1996년 오클랜드 대학교의 생물학자 케빈 헌트가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는 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조류인 까마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었습니다. 1970년대 침팬지의 도구 사용도 반신반의했던 시대였기에, 날아다니는 새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얼토당토않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1998년 일본에서 관찰된 까마귀의 행동은 이러한 편견을 완전히 깨뜨렸습니다. 까마귀들은 호두를 깨 먹기 위해 차로에 호두를 떨어뜨린 후, 차가 호두를 밟아 깨지면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유유히 도로로 걸어가 호두를 먹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구 사용을 넘어 교통 신호 체계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고도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007년과 2009년에는 더욱 진전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까마귀는 상황에 따라 도구를 구부려 활용하는 능력을 보였으며, 2014년 브리스톨 대학교의 인지행동 학자인 사라 제 보트 박사의 실험에서는 더욱 정교한 인지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까마귀는 물에 담긴 먹이를 얻기 위해 돌을 물에 떨어뜨려 수위를 높이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본능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물에 뜨는 물체와 가라앉는 물체를 구별하고, 좁고 넓은 유리관 중 어디에 돌을 떨어뜨려야 더 효율적으로 먹이를 획득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능력까지 보였다는 점입니다.

2018년에는 긴 막대기와 짧은 막대기를 4분 만에 연결해 통 깊숙한 곳의 먹이를 꺼내 먹는 복합 도구 제작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이러한 복합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능력은 인간의 아기들도 5세 이상은 되어야 가능한 수준입니다. 까마귀의 도구 사용 능력은 단순한 학습이 아니라 상황을 분석하고 최적의 해결책을 창출하는 진정한 문제 해결 지능의 발현인 것입니다.

까마귀 뇌의 신경망 구조와 뉴런 밀도의 비밀

까마귀의 놀라운 지능은 그들의 뇌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과거에는 조류의 뇌가 포유류에 비해 지능 면에서 부족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뇌에서 학습과 기억, 사고 등 지능과 관련 깊은 부위는 뇌의 바깥쪽에 위치한 신피질인데, 조류의 뇌에는 신피질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20년 독일 보훔 루르 대학교 신경과학과의 마틴 스타흐 박사는 기존 관념을 뒤집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지 표지에 발표했습니다. 그는 유압 물개의 뇌 신경망을 3차원 영상 기술로 분석한 결과, 쥐의 신피질에서 수직과 수평의 신경망들이 교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류의 뇌 중 팔륨이라는 부위에서 쥐의 신피질과 똑같은 구조의 신경망을 발견했다는 점입니다. 즉, 조류의 대뇌에는 신피질은 없었지만 팔륨에서 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025년 1월 인지 신경과학자인 펠릭스 박사는 까마귀가 비둘기, 닭, 타조 같은 새보다 팔륨에 분포하는 신경 세포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까마귀의 팔륨은 무게가 2g으로 7.5g인 타조의 뇌보다 3.7배나 작았지만, 뇌에 분포한 뉴런은 약 3억 개로 타조보다는 1.5배, 비둘기나 닭보다는 3배 이상 많았습니다.

포유류와의 비교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큰 까마귀의 뇌와 카푸친 원숭이의 뇌를 비교하면, 뇌 질량 중 팔리움과 신피질의 비중이 까마귀가 훨씬 더 크며, 절대적인 뉴런의 개수도 까마귀가 더 많았습니다. 체코의 동물학자 파벨 사매 박사는 지능은 뇌의 크기나 체중 대비 뇌의 질량이 아닌 뇌 속 신경세포의 밀도로 좌우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똑똑하기로 유명한 까마귀나 앵무새의 경우 그 밀도가 일반적인 영장류보다 2배나 높다는 것입니다. 이는 뇌 신경망의 밀도와 효율성이 지능의 핵심 요소임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사회적 진화와 긴 유아기가 만든 지능의 발달

까마귀의 뇌가 고도로 발달하게 된 진화적 배경에는 복잡한 사회생활과 긴 양육 기간이 있습니다. 2019년 비엔나 대학교 동물 행동학자인 팔 미르 박사는 까마귀의 사회적 지능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까마귀는 번식을 맞이하기 전 청년기에 다른 개체들과 무리를 이루며, 이 시기에 서로 협력해 다른 무리를 공격하기도 하고 먹이가 있는 곳을 공유합니다. 이 과정에서 집단 내 위계가 형성되며, 짝짓기 후 무리 생활을 하지 않게 되어도 과거 자신과 같은 그룹에 속했던 그룹원들을 구별할 수 있고 누구에게 도움을 받았는지도 기억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사회생활은 까마귀의 뇌가 고도화되는 선택압으로 작용했습니다. 인류가 집단을 이루며 서로 협동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담당하는 뇌가 커졌다는 사회적 지능 가설과 정확히 같은 메커니즘입니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수행하려면 높은 수준의 인지 능력이 필요하며, 이것이 까마귀의 뇌 발달을 촉진한 것입니다.

2020년 인지 고고학자 나탈리 오 메니 교수는 까마귀의 유독 긴 유아기가 이들의 지능 발달을 가속화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능이 높은 까마귀는 최대 4년까지 부모로부터 먹이를 공급받고 사냥이나 도구 사용 등 다양한 생존 방법을 배웁니다. 이는 인간으로 치면 거의 스무 살까지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과 같으며, 비행 방법만 배우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다른 새들과는 사뭇 다른 행동 양식입니다. 나탈리 박사는 까마귀의 이런 긴 유아기 양육 방식이 인간과 돌고래 등 영리한 포유류들과 유사하며, 이는 뉴런의 신경 밀도 증가와 인지 능력의 확장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학습 기간이 길수록 더 복잡한 기술과 사회적 규칙을 습득할 수 있으며, 이것이 세대를 거쳐 누적되면서 까마귀 종 전체의 지능 수준을 끌어올린 것입니다.

까마귀는 우리에게 지능의 수렴 진화라는 놀라운 진화 생물학적 현상을 보여줍니다. 조류와 포유류는 3억 2천만 년 전에 갈라져 수억 년 동안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진화의 나무 끝자락에서는 양쪽 모두에서 뛰어난 인지력을 갖춘 종들이 등장했습니다. 무척추동물인 문어나 오징어 역시 진화의 수렴 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까마귀의 사례는 지능이 하나의 진화적 경로에 국한되지 않으며, 사회적 복잡성과 긴 학습 기간이라는 조건이 충족되면 다양한 생물 계통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지구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높은 지능을 갖춘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출처]
과학드림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dPPMoPCH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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