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4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 온 거미는 단순히 징그러운 생물체가 아니라, 정교한 생물학적 기계로 진화한 놀라운 포식자입니다. 음극으로 대전된 거미줄을 이용한 비행, 물속 공기통 건설, 유압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다리까지, 거미는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엔지니어링 결과물입니다. 특히 거미줄은 인류가 수천억 원을 투자하고도 완벽히 모방하지 못한 꿈의 신소재로, 강철보다 5배 강하면서도 뛰어난 연성을 동시에 지닌 모순의 물질입니다. 이 글에서는 거미의 진화 과정과 그들이 지닌 경이로운 능력, 그리고 인류가 거미줄을 인공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겪고 있는 도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거미
거미

거미줄의 비밀: 4억 년 군비 경쟁의 산물

거미는 곤충이 아닌 전갈, 투구게와 같은 협각류에 속하며, 그 역사는 5억 년 전 캄브리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캐나다 버제스 셰일에서 발견된 몰리소니아는 협각이라 불리는 턱 구조를 가진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이들로부터 현재의 거미가 등장하기까지 수많은 진화적 실험이 이루어졌습니다. 약 3억 8천만 년 전 고생대 데본기에 초기 거미류인 아테로코프스가 등장했습니다. 이 생물은 현대 거미와 비슷하지만 전갈처럼 긴 꼬리가 달려 있었고, 거미줄을 뽑는 방적 돌기가 없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2008년 폴 셀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아테로코프스는 배 아래쪽의 단단한 판 가장자리에 실을 만드는 구멍들이 있어 실을 뽑을 수는 있었으나, 다리가 변형된 방적돌기가 없어 정교한 조작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결과 초기 거미류들은 너덜너덜한 장판 같은 형태만 만들 수 있었고, 거미줄을 사냥용이 아닌 알 보호나 굴 안감 용도로만 사용했습니다. 약 1억 년 전 백악기 호박 화석에서 발견된 키메라 라크네는 거미줄 진화의 미싱 링크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이 화석은 조상의 특징인 긴 꼬리를 여전히 달고 있으면서도 현대 거미처럼 엉덩이에 방적돌기를 가지고 있어, 방적돌기가 정교해지는 진화의 중간 단계를 완벽하게 증명합니다. 2007년 옥스퍼드 대학의 프리츠 볼라스와 폴 셀든 박사는 거미줄의 진화 원인을 곤충과의 4억 년에 걸친 군비 경쟁에서 찾았습니다. 고생대 석탄기에 곤충이 처음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기 시작하면서 거미들은 이 풍부한 먹잇감을 놓칠 수 없었고, 땅바닥에 깔아 두던 단순한 시트 모양의 거미줄을 조금씩 공중으로 들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곤충들이 비행 속도를 높이고 회피 기동을 발전시키자, 거미줄도 단순한 그물에서 점점 더 넓고 투명하며 정교한 둥근 거미줄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나방 같은 곤충들이 몸에 비늘을 두르는 방어수를 개발하자, 거미들은 더 강력한 접착력을 가진 나선형 줄이나 사다리 모양의 특수 거미줄을 개발하며 응수했습니다.

시기 거미 진화 단계 주요 특징
3억 8천만 년 전 아테로코프스 긴 꼬리 보유, 방적돌기 없음, 단순 실 생산
1억 년 전 키메라 라크네 꼬리+방적돌기 동시 보유, 진화 중간 단계
2억 년 전 현대형 거미 정교한 방적돌기, 복잡한 거미줄 구조 완성

거미줄이 인류가 완벽히 모방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물질이 본질적으로 모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재료공학에서 강한 물질은 딱딱해서 잘 부러지고, 잘 늘어나는 물질은 약하기 마련인데, 거미줄은 강도와 연성을 동시에 보유합니다. 그 비밀은 나노 구조에 있습니다. 거미줄 단백질을 확대하면 베타 시트라는 레고 블록 같은 결정 구조가 층층이 쌓여 강철 같은 단단함을 제공하고, 그 사이를 알파 나선의 스프링 같은 구조가 연결합니다. 평소에는 부드러운 스프링이다가 충격을 받으면 딱딱한 블록들이 서로를 꽉 잡아주는 지능형 충격 흡수제인 셈입니다. 2억 년 전 트라이아스기 무렵에는 이미 현대적인 형태의 거미줄이 완성됐고, 지금 우리가 숲 속에서 보는 아름답고 정교한 거미줄은 도망치려는 곤충과 기필코 잡으려는 거미 사이에서 벌어진 수억 년간의 치열한 창과 방패의 대결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거미 독의 진화: 유동적 무기 시스템

거미는 사마귀나 개미처럼 먹이를 우걱우걱 씹어 삼킬 수 있는 턱을 지니지 못했기에, 독과 소화액을 이용한 체외 소화라는 효율적인 식사법을 발전시켰습니다. 거미는 먹이에 송곳니를 박아놓고 그 구멍으로 소화액과 독을 함께 주입하여 내장과 근육을 흐물흐물한 수프처럼 녹인 뒤 이를 빨아먹습니다. 거의 모든 거미가 지니고 있는 거미 독은 아직 그 기원이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거미줄만큼이나 거미류의 성공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1년 팀 리데 박사는 거미의 독이 굉장히 유동적인 시스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호주 깔때기그물거미의 수컷은 짝을 찾아 돌아다니기 때문에 척추동물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델타 헥사포신이란 독을 만들어 인간에게도 위험하지만, 굴에서 생활하는 암컷들은 사냥을 위해 곤충들에게만 특화된 독을 진화시켰습니다. 또한 어떤 거미는 특정 독 하나의 독성은 약하지만 이를 다른 독과 섞어서 사용함으로써 독성을 65% 이상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리드케 박사는 거미의 독 최적화 가설을 주장하며, 어떤 거미들은 먹잇감의 크기나 저항 정도에 따라 주입하는 독의 양을 조절하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메리카 지역에 사는 털이 많은 타란툴라의 경우 털 자체를 자신의 방어용으로 사용함으로써 불필요한 독의 소비를 줄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치열한 독의 진화 과정에서 오히려 힘들게 얻은 독을 과감히 버린 거미들도 있습니다. 2006년 길버트 박사는 응달거미과 거미들의 독샘이 완전히 퇴화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이들은 대신 포박과 소화액 도포 전략을 택했습니다. 응달거미과 거미들은 먹이를 거미줄로 미친 듯이 감아 기록상 수백 m에 달하는 거미줄을 사용하며, 거미줄로 감싼 먹이 전체에 소화액을 듬뿍 발라 녹여 먹습니다. 그러나 2025년 로잔대학교의 펑 샤우진 박사는 이들의 소화액에 여전히 신경 독성이 남아 있으며 초파리에게 주입했을 때 빠르게 죽은 것으로 미루어, 독샘은 사라졌지만 소화액 내 독소 성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즉 독의 분비샘이 독샘이 아닌 위장으로 옮겨갔을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거미는 신체적인 면에서도 신기한 동물인데, 죽은 거미가 다리를 안쪽으로 돌돌 말고 있는 모습은 이들의 독특한 신체 비밀을 보여줍니다. 거미의 다리는 굽히는 근육만 있고 펴는 근육은 없어, 다리를 펼 때는 유압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두부에 있는 심장이 펌프질을 해서 혈림프라는 체액을 다리 쪽으로 강하게 밀어 넣으면 그 압력으로 접혀 있던 다리가 착하고 펴집니다. 2022년 과학자들은 이 특징을 이용해 죽은 거미에 공기를 주입했다가 뺐다가 하면서 거미의 다리를 집게로 사용해 물건을 집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런 유압 시스템 덕분에 깡충거미 같은 종들은 근육의 한계를 넘어 자기 몸길이의 50배가 넘는 거리를 순식간에 도약할 수 있습니다.

인공 거미줄 개발: 300년간의 도전

오래전부터 거미는 인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매혹적인 대상이었으며, 특히 거미줄로 옷을 만드는 상상은 현실로 이어졌습니다. 영국의 직물 전문가 사이먼 피어스와 미국의 사업가 니콜라스 고들리는 19세기말 프랑스 신부이자 거미학자였던 폴 캄캄부에가 처음 고안한 거미줄 뽑는 기계를 복원해, 2004년부터 마다가스카르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4년 동안 마다가스카르의 야생에서 붉은 다리 황금색 왕거미를 120만 마리나 채집했고, 매일 아침 거미를 잡아와서 25마리 정도를 기계 틀에 고정하고 실을 뽑은 뒤 저녁이 되면 다시 숲에 풀어줬습니다. 거미 한 마리당 약 20분 동안 30m의 실크를 생산했으며, 70명 이상의 인력이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망토를 제작하기 위해 사용된 거미줄의 총 무게는 1.5kg이었고, 6,000시간의 공을 들여 자수 패턴을 추가해 2009년 세계에서 가장 큰 황금 거미줄 망토가 탄생했습니다. 염색을 하지 않았음에도 눈부신 황금빛을 띠는데, 이는 해당 거미의 실 자체에 포함된 카로티노이드 성분 때문입니다. 거미줄은 같은 질량일 때 강철보다 5배 강하고 기존 방탄복 소재보다 더 질기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산업이나 의학 분야에 엄청난 활용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나 거미줄을 완벽히 인공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은 아직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1709년 프랑스의 고위 공직자였던 생틸레르는 거미 알 주머니를 끓인 후 가공해서 장갑과 스타킹을 만들어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에 제출해 인정을 받았고, 거미 농장 건설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710년 프랑스의 곤충학자 레오미르는 직접 거미를 대량 사육하며 실크를 얻어보고자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는 500g의 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왕거미 55,296마리가 필요한 반면, 같은 양의 실을 누에로 생산하면 2,300 마리면 충분하기 때문에 거미가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거미의 동종 포식도 문제였는데, 각 상자에 200에서 300마리의 거미들을 넣어 놓고 며칠 뒤 다시 확인했더니 겨우 한두 마리만 남게 됐다고 합니다.

시도 방법 시기/연구자 결과
직접 사육 1710년 레오미르 동종 포식 문제로 실패
염소 유전자 삽입 1990년대 후반~2000년대 분자량 부족 (60~140kDa)
대장균 이용 2000년대 단백질 합성 중단 및 분해
조각 연결 기술 2018년 크리스토퍼 보 박사 556kDa 슈퍼 단백질 합성 성공

현대 과학은 유전공학 기술을 활용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거미의 실 단백질 유전자를 염소 DNA에 삽입해 새끼 염소의 젖으로부터 거미줄을 얻으려는 시도가 이뤄졌으나, 그 강도가 자연 거미줄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자연산 무당거미류의 거미줄을 이루는 주요 단백질인 스파이드로인의 분자량은 보통 250에서 350킬로 달톤인데, 염소의 젖에서 추출한 거미줄 단백질의 분자량은 대부분 60에서 140킬로 달톤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거미줄의 유전자가 너무 반복이 많아서 염소의 세포 내에서 불안정했고, 연구진은 어쩔 수 없이 유전자의 길이를 인위적으로 줄여 특정 부분만 사용하게 되면서 분자량이 작은 단백질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대장균을 이용한 시도도 마찬가지로 대장균이 거미줄 단백질 합성을 멈추거나 제멋대로 큰 단백질들을 잘라내는 바람에 분자량이 작은 단백질들만 나왔습니다. 그러나 2018년부터는 조금씩 실마리가 풀려 이 난제를 해결하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보 박사팀은 한 번에 긴 단백질을 못 만든다면 짧게 만들어서 붙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박테리아에게 짧은 거미줄 조각을 생산하게 한 뒤 이 조각들을 특수 촉매 기술로 연결했습니다. 그 결과 자연산보다 더 크고 무거운 556 kDa 동급의 슈퍼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진짜 거미줄과 똑같은, 아니 더 강력한 인공 거미줄을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길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4억 년 전 등장한 거미는 지구상에서 물리학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유압으로 움직이는 다리, 세상을 진동으로 읽는 감각, 그리고 강철보다 강한 실을 뽑아내는 능력까지, 이 작은 포식자는 그 자체로 완벽한 생물학적 기계입니다. 인류는 수십 년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이들을 조금씩 흉내 내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300년 전 거미 농장을 꿈꿨던 생틸레르의 꿈이 박테리아를 통해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미래에 우리는 고층 빌딩과 우주선을 만드는 재료를 얻기 위해 광산이 아니라 거미의 유전자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입니다. 거미는 단순히 징그러운 동물이 아니라,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완성한 최고의 엔지니어링 결과물이자 인류가 배워야 할 위대한 스승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거미는 곤충인가요? A. 아닙니다. 거미는 곤충이 아니라 전갈, 투구게와 같은 협각류에 속합니다. 곤충은 다리가 여섯 개지만 거미는 여덟 개이며, 협각이라 불리는 턱 구조를 가진 점에서 곤충과 구별됩니다. 협각류의 역사는 무려 5억 년 전 캄브리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Q. 거미줄은 왜 그렇게 강한가요? A. 거미줄의 강도 비밀은 나노 구조에 있습니다. 베타 시트라는 레고 블록 같은 결정 구조가 층층이 쌓여 강철 같은 단단함을 제공하고, 그 사이를 알파 나선의 스프링 같은 구조가 연결합니다. 이로 인해 평소에는 부드러운 스프링이다가 충격을 받으면 딱딱한 블록들이 서로를 꽉 잡아주는 지능형 충격 흡수제 역할을 하며, 같은 질량일 때 강철보다 5배 강하면서도 뛰어난 연성을 동시에 지닙니다. Q. 인공 거미줄은 언제쯤 상용화될 수 있나요? A. 2018년 미국 워싱턴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보 박사팀이 박테리아에게 짧은 거미줄 조각을 생산하게 한 뒤 특수 촉매 기술로 연결해 자연산보다 더 크고 무거운 556 kDa 동급의 슈퍼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성공하면서 상용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량 생산 및 비용 절감 기술이 더 발전해야 하므로, 상용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Q. 모든 거미가 독을 가지고 있나요? A. 거의 모든 거미가 독을 지니고 있지만, 응달 ittermi과 거미들처럼 독샘이 완전히 퇴화한 예외도 존재합니다. 이들은 대신 먹이를 거미줄로 미친 듯이 감고 소화액을 발라 녹이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다만 2025년 로잔대학교의 펑 샤우진 박사는 이들의 소화액에 여전히 신경 독성이 남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Q. 거미는 어떻게 다리를 움직이나요? A. 거미의 다리는 굽히는 근육만 있고 펴는 근육은 없어, 다리를 펼 때는 유압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두부에 있는 심장이 펌프질을 해서 혈림프라는 체액을 다리 쪽으로 강하게 밀어 넣으면 그 압력으로 접혀 있던 다리가 펴집니다. 이 때문에 죽은 거미는 체액 압력이 사라져 다리를 안쪽으로 돌돌 말고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P2Ft39GyQTc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6/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